방역 당국 감시망 벗어나 지금까지 4명에게 연쇄 전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숨진 76번 환자가 의사·구급대원·환자 보호자 등을 잇달아 감염시킨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환자가 주요 전파 경로로 부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75세 여성인 76번 환자는 지난달 27∼28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아 치료를 받던 중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퇴원했다가 이달 5일 낙상으로 엉덩이뼈가 골절되자 사설 구급차를 불렀고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을 거쳐 서울 건국대병원에 입원했다.
이 과정에서 76번 환자에게서 메르스를 옮은 사람은 현재 4명에 이른다.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의 레지던트(31)가 감염됐고 환자를 이송한 사설 구급차의 운전기사(70)와 동승한 구급요원(37)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건국대병원에서 76번 환자와 같은 병실(2인실)을 썼던 다른 환자의 보호자(44)도 메르스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76번 환자는 5일 병원 응급실로 옮겨지며 자신이 메르스 유행지였던 삼성서울병원을 거쳤다는 말을 하지 않아 의료진이 제대로 감염 방지 대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메르스 증상이 심각해 체내 바이러스가 많아져 전염력이 더 강했을 공산도 크다.
메르스에 감염된 사설 구급차의 구급대원은 “응급 이송 당시 골절환자로만 알고 있었고 마스크는 썼지만 장갑은 착용하지 않았다”고 방역 당국에 진술했다.
방역 당국의 부실 대처도 문제를 키웠다. 76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에 방문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하고 제대로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8일 브리핑에서 “3일부터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한 환자의 명단을 받아 관리하며 76번 환자에게 6일과 7일 전화를 했으나 환자가 병원에 있어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76번 환자는 고령인데다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을 앓아 애초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는 건국대병원에서 메르스 격리 치료를 받던 중 10일 사망했다.
76번 환자에게 메르스를 옮긴 사람은 삼성서울병원의 ‘슈퍼 전파자’로 알려진 14번 환자(35)로 추정된다. 14번 환자는 국내 첫 메르스 감염자인 1번 환자(68)와 평택성모병원의 같은 병동에 있다가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이 때문에 76번 환자를 통한 전파를 사회 일부에서는 대표적 연쇄 감염 사례로 우려한다. 즉 ‘1번→14번→76번→다수’ 식으로 차수가 늘어나면서 바이러스가 대거 확산한다는 것이다.
76번 환자를 통한 전파가 병원 안에서만 일어난 ‘병원 내 감염’이라 너무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이런 연쇄 확산이 병원과 무관한 공공장소 등 사회 곳곳을 급습하는 ‘지역 내 감염’으로 악화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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