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여름 폭우/손성진 논설고문

[길섶에서] 여름 폭우/손성진 논설고문

손성진 기자
입력 2019-08-15 17:16
수정 2019-08-16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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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대지에 생명수가 퍼붓는다. 냉한 가슴마저도 쓸데없는 불덩이로 만들어 버린 뜨거운 여름 위로 우렁찬 빗줄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끝 모를 창공에서 직선으로 낙하한다. 저 들판에서, 저 산 위로, 종내는 내 속을 깊숙이 휩쓸고 세차게 흘러간다.

겹겹의 마음속 때도 회초리처럼 휘두르고 갈퀴처럼 긁는 빗살에 씻긴다.

씻어낼 것이 너무 많았다. 더께처럼 덕지덕지 붙은 미천한 증오의 편린들.

벗겨짐을 거부하고 빨판으로 부여잡는 썩은 조각들엔 화약 폭음보다 더 큰 천둥이 혼을 내듯 때린다. 놀란 땟자국이 비로소 떨어져 나간다.

폭우는 퀴퀴하게 절었던 마음을 세척하고 엷은 향을 뿌렸다. 몸살 났듯 끓어 오른 헛열도 식혀 주었다.

여름비를 맞은 마음은 갓 피어난 연잎만큼 부드럽고 다사롭다.

이제 백자처럼 하얀 것들만 생각하며 살 수 있겠다. 한동안은.

그보다 목마른 땅, 말라붙은 잡초에 여름비는 기적이 된다. 죽음을 뚫고 피어오른 새순들은 싱그러운 여름을 향해 부활의 몸짓을 한다.

더러 세상을 삼킬 듯이 기세를 부리더라도 여름 폭우를 마냥 두려워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sonsj@seoul.co.kr
2019-08-1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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