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견문기] 스러져 가는 낡은 건물 속 고개 돌리면 고층 빌딩이…

[흥미진진 견문기] 스러져 가는 낡은 건물 속 고개 돌리면 고층 빌딩이…

입력 2019-06-12 17:44
수정 2019-06-1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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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교육학 박사) 동화작가
이소영(교육학 박사) 동화작가
지하철 삼각지역 ‘배호, 만남의 광장’에는 사각 안경에 고개를 비스듬히 한 배호가 기타를 치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60대에게는 익숙하지만 50대 이하에게는 낯선 가수 배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계단을 올라 삼각지 화랑거리로 나섰다. 60년대까지 미군을 고객으로 한 쫑쫑이그림(물감을 쫑쫑 찍어 그린 그림)으로 호황을 누렸다는 거리에는 아직 수십개의 화랑과 액자 가게가 늘어서 있었다.

삼각지 로터리에 춤추듯 사뿐히 한 발로 서 있는 소녀상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가 있었다. 노래비에서 2시 방향에 400m 오름 구간의 배호길이 있었다. 인기를 누려 화려해 보였지만 병마에 시달리며 29세의 나이에 요절한 가수 배호를 닮아서일까 얼핏 보기에 편안해 보이는 길은 걸을수록 차츰 숨이 가빠지며 힘이 들었다. 좁은 대구탕 골목길을 지나다 보니 50년을 훌쩍 넘긴 삼각 맨션이 나타났다. 복잡하게 엉킨 전깃줄과 전봇대 뒤로 보이는 회색으로 줄 쳐진 누런 맨션은 넓은 지역을 미군에게 내주어야 했던 용산의 역사처럼 심란스러웠다.

나직하고 달콤하게 들리던 해설사의 목소리도 가빠질 정도로 오르고 올라 높은 곳에 있는 김대건 신부가 잠시 묻혔다 이장됐다는 왜고개 성지에 당도했다. 작지만 정갈하고 아름답게 잘 정돈된 곳이었다.

한국 최초의 아파트인 풍전아파트를 지나 심원정 터에 올랐다. 천연기념물인 백송은 보이지 않고 대신에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지키고 있었다. 둥근 아치형 창호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용산신학교와 예수성심성당에 들르고, 장병림 가옥터와 1966년에 개업한 후 지금도 ‘목욕합니다’ 팻말이 세워져 있는 원삼탕, 1967년 개업해 3대째 운영해 온 해장국 전문식당 창성옥을 지나 마지막 코스인 경의선 숲길공원에 도착했다. 오늘 다녀본 삼각지와 원효로, 용문동에는 낡고 스러져 가는 낮은 건물들과 고개를 돌리면 하늘 높이 치솟은 반짝거리는 건물들이 뒤엉켜 있었다. 지금은 서로 낯설고 대비되지만, 나름의 조화를 위해 더욱 정성을 쏟아야 할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소영(교육학 박사) 동화작가

2019-06-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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