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운동 초반 지지율 1위, 청와대 들어갔다

선거운동 초반 지지율 1위, 청와대 들어갔다

입력 2012-11-20 00:00
수정 2012-11-2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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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D-30 이후 지지율 흐름

역대 대선에서 D-30일, 후보 등록, 선거운동 기간 돌입 시점은 각 후보 간 지지율의 변곡점이 됐다. 흥미로운 건 대선 여론조사가 처음 시작된 1987년 13대 대선 이후 2007년 17대 대선까지 모두 다섯 차례 대선에서 법정 선거운동 기간에 1, 2위가 바뀐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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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6대와 2007년 17대는 이번 18대 대선과 정치 일정이 똑같다. 12월 19일 대선이 치러졌고, 11월 27일부터 법정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2002년의 경우 후보 등록 직전인 11월 23일 갤럽 조사까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32.3%로 줄곧 선두였고, 노무현 민주당 후보 25.4%,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25.1%로 박빙이었다. 그러나 하루 뒤인 24일 노·정 단일화가 되자 전세는 역전됐다. 25일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는 43.5%로 올랐고, 이 후보는 37.0%를 기록했다. 노 후보는 단일화 이후 단 한 차례도 역전을 허락하지 않았고, 정 후보의 지지 철회도 최종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11월 3일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민련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하며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같은 달 15일 여론조사까지 김대중 후보는 34.0%로 1위를 달렸고,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각각 24.4%, 23.7%로 박빙이었다. D-30일이던 18일을 기점으로 이회창-이인제 후보의 단일화가 최종 무산됐다. 신한국당은 같은 달 21일 민주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승부수를 띄우며 추격에 나섰다. 공식 선거운동 개시 후인 11월 29일 조사에서 김대중 후보는 32.8%, 이회창 후보는 29.3%로 양강 구도가 형성됐고, 김대중 후보의 우위는 선거 결과까지 이어졌다.

2007년 대선은 당시 야당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부동의 1위였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의 범여권 단일화가 시차를 두고 무산된 후, 이명박 후보는 투표일까지 줄곧 독주 체제를 굳혔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2012-11-2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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