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빠 메르스지… 가족이 피멍듭니다”

“네 아빠 메르스지… 가족이 피멍듭니다”

입력 2015-06-18 18:56
수정 2015-06-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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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0일 첫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 환자가 발생한 뒤 18일로 30일째를 맞았다.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141명(확진 환자 165명 중 완치된 24명 제외)의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 중인 국내 감염·호흡기내과 의료진이 메르스 감염 위협뿐 아니라 또 다른 사회적 위협으로 고통받는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른바 메르스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과 그 가족들에 대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의 ‘신상 털기’다. 서울신문은 지난달 28일 평택성모병원을 경유해 대전 건양대병원으로 온 16번째 환자를 치료하면서 고통을 겪게 된 A교수와의 2시간 전화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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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혀
숨막혀 ‘산 넘어 산인가.’ 18일 서울 강동경희대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메르스 확진자가 이 병원 투석실을 이용한 사실이 이날 확인되면서 대규모 감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앞서 이 병원은 또 다른 확진자가 지난 6일 응급실에 다녀가 집중관리병원으로 지정된 바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저는 대전 건양대병원 호흡기내과 의사입니다. 매일 고글과 방호복, 장갑을 착용하고 2개 병동에 메르스로 ‘코호트 격리’된 환자와 보호자 등 50명을 돌보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우리 병원 간호사 1명이 메르스 환자 심폐소생술 이후 감염 확진 판정을 받은 후 감염 두려움은 커지고, 체력은 점점 고갈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제 직업은 환자를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가족은 저의 직업으로 인해 고통받고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21일 전, 40대 남성이 발열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에 내원했습니다. 저는 이 남성의 증세가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직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중동을 다녀온 것도 아니었고, 당시만 해도 정부가 확진 환자 발생 병원이 어디인지 비공개 방침을 고수해 제게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습니다. 바이러스성 폐렴이 의심돼 항바이러스제를 집중 투약했습니다. 이 남성이 내원한 지 사흘째인 30일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이 남성을 즉각 격리 조치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 남성은 평택성모병원을 경유한 16번째 환자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호흡기내과 의사 3명이 즉각 격리됐습니다. 그리고 제 가족의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제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자녀들의 학교와 다니는 학원까지 낱낱이 파헤친 정보가 SNS를 통해 퍼졌습니다. 정신적 고통은 실시간으로 엄습해 왔습니다.

제가 격리돼 있는 동안 가족들은 못난 남편, 아빠로 인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메르스 아빠’를 둔 제 아이들에게 모든 시선이 쏠렸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교실에 몰려들어 ‘너네 아빠 메르스 의사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평소 통학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큰아이는 집 앞에서 내리지 못하고 먼 거리를 다시 걸어와야 했습니다.

벌써 3주째, 큰아이는 여전히 서럽게 웁니다. 자신을 메르스균으로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하루하루 상처가 된다고 합니다. 제 마음도 무너지지만 저는 마음을 다잡고 묵묵히 병원 일을 합니다. 공포에 시달리며 저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메르스 증상이 없습니다. 메르스 검사에서 세 차례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와 아내는 우리 아이들 가슴에 낙인찍힌 또 다른 메르스 공포와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한번 찍힌 사회적 낙인에 정작 가족들이 지역사회에서 일상으로 되돌아오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대한민국 호흡기내과 의사인 저는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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