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어제 미국의 외교 전문 25만여건을 공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각국 지도자들에 대한 거침없는 인물평으로 미 국무부를 궁지로 몰아넣으면서다. 우방인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깊이가 부족하다.”고 폄하할 정도였으니….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다. 외교 전문은 그를 ‘무기력한 늙은 친구’(flabby old chap)라고 표현했다. 아마 뇌졸중으로 쇠약해진 그에 대해 주한 미 대사관 정보통들이 보낸 동향보고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활발한 근황은 그런 첩보를 무색하게 한다. 그는 연평도 도발 닷새 만에 3남 김정은과 함께 교향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포격 이틀 전엔 해안포 지휘부대를 찾았다고 전해진다.
2008년 미 공화당 대통령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북한 ‘정권교체론’(regime change)을 제기했다. CNN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우라늄 농축시설 시위와 연평도 도발을 자행한 북측을 겨냥, “정권 교체를 논의할 시기가 됐다.”고 한 것이다. “한반도 위기에서 공화·민주당 행정부들이 추구해온 대북 유화정책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설명과 함께. ‘레짐 체인지론’은 2기 부시 행정부도 한때 검토했다.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콘돌리자 라이스를 국무장관으로 지명했다. 그녀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 동유럽의 공산정권들이 친시장 정권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관리’한 백악관의 실무자였다.
북한 정권교체론의 이면에는 미 조야의 좌절감이 배어 있다. 북핵 개발 저지를 위한 강온 전략 어느 것도 먹혀들지 않는 상황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 검토한 영변 핵단지 폭격은 한국이 인질로 잡혀 있는 한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다. 대북 경제제재 또한 중국이 북한에 계속 뒷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별다른 실효성이 없지 않은가. 이런 딜레마 속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북 지도부를 교체하는 방안은 외견상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레짐 체인지’는 가능한 수단 측면으로 보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나 마찬가지다. 북한주민들이 들고 일어나거나, 궁정 쿠데타를 유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김 위원장이 북 내부에서 무소불위의 통제력을 행사하는 한 현실성이 적은 얘기가 아닐까. 다만 독재정권이 3대를 이어간 역사적 전례가 없다는 ‘상식’이 유일한 위안일 듯싶다. 굳이 “군사력이 경제력에 비해 비대한 나라는 반드시 멸망했다.”는 폴 케네디 교수의 연구 결과를 들먹일 필요도 없겠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다. 외교 전문은 그를 ‘무기력한 늙은 친구’(flabby old chap)라고 표현했다. 아마 뇌졸중으로 쇠약해진 그에 대해 주한 미 대사관 정보통들이 보낸 동향보고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활발한 근황은 그런 첩보를 무색하게 한다. 그는 연평도 도발 닷새 만에 3남 김정은과 함께 교향악단 공연을 관람했다. 포격 이틀 전엔 해안포 지휘부대를 찾았다고 전해진다.
2008년 미 공화당 대통령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북한 ‘정권교체론’(regime change)을 제기했다. CNN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에서 우라늄 농축시설 시위와 연평도 도발을 자행한 북측을 겨냥, “정권 교체를 논의할 시기가 됐다.”고 한 것이다. “한반도 위기에서 공화·민주당 행정부들이 추구해온 대북 유화정책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설명과 함께. ‘레짐 체인지론’은 2기 부시 행정부도 한때 검토했다.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콘돌리자 라이스를 국무장관으로 지명했다. 그녀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 동유럽의 공산정권들이 친시장 정권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관리’한 백악관의 실무자였다.
북한 정권교체론의 이면에는 미 조야의 좌절감이 배어 있다. 북핵 개발 저지를 위한 강온 전략 어느 것도 먹혀들지 않는 상황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 검토한 영변 핵단지 폭격은 한국이 인질로 잡혀 있는 한 선택하기 어려운 카드다. 대북 경제제재 또한 중국이 북한에 계속 뒷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별다른 실효성이 없지 않은가. 이런 딜레마 속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북 지도부를 교체하는 방안은 외견상 그럴싸해 보인다.
그러나 ‘레짐 체인지’는 가능한 수단 측면으로 보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나 마찬가지다. 북한주민들이 들고 일어나거나, 궁정 쿠데타를 유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김 위원장이 북 내부에서 무소불위의 통제력을 행사하는 한 현실성이 적은 얘기가 아닐까. 다만 독재정권이 3대를 이어간 역사적 전례가 없다는 ‘상식’이 유일한 위안일 듯싶다. 굳이 “군사력이 경제력에 비해 비대한 나라는 반드시 멸망했다.”는 폴 케네디 교수의 연구 결과를 들먹일 필요도 없겠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2010-11-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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