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 왼손의 변명/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2030 세대] 왼손의 변명/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입력 2022-04-04 20:32
수정 2022-04-05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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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난 왼손잡이다. 글을 쓰거나 밥 먹을 때 왼손을 쓰는 건 물론이고 방망이를 휘두르거나, 심지어 가르마도 왼쪽으로 하고 있다. 왼손잡이래서 나를 나무란 사람도 없고 놀린 이도 없다. 크게 불편하지도 않다. 회식 자리에서 오른손잡이와 바싹 붙어 앉아 밥 먹을 때 부딪치는 정도의 불편함이 있다. 모든 왼손잡이가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지독한 악필인 거는 인정해야겠다.

영국에 있는 동안 우성향의 신문 타임스지 대신 좌성향의 가디언지를 오래 구독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디언지의 문화예술 부록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라틴어로 ‘시니스터’(sinister)는 ‘왼쪽’ 혹은 ‘불길하다’는 의미다. 왼손잡이나 왼편을 수상하고, 낯설고, 심지어 불쾌하게 보는 이유의 역사가 결코 짧지 않다. 로마 시대의 소설을 보면 집주인이 문지기에게 손님들이 문턱을 오른발로 먼저 넘는지 확인시키기도 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도 늘 오른쪽 신발을 먼저 신었다고 한다.

왼쪽은 익숙하지 않기에 오히려 자유롭다 할 것이다. 보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얻은 자유다. 굳은 팔을 풀어 주기 위해선 팔이 굽은 반대 방향으로 뻗어 주고, 머리를 빗을 때도 모발이 난 방향 반대로 빗어 주어야지 시원하다. 왼손잡이는, 사고도 익숙하지 않은 쪽으로 고집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승자가 쓰기도 하지만 패자가 쓴 망상이기도 하다.” 영국 소설가 줄리언 반스가 한 말이다. 왼손잡이가 할 듯한 변명이다. ‘독일의 채플린’으로 알려졌던 천재 코미디언 카를 발렌틴(1882~1948)의 별명은 링크스뎅커(Linksdenker). ‘왼생각쟁이’ 정도로 번역해 볼 수 있겠다.

왼손잡이는 평등의 가치를 평등에서 찾지 않는다. 음악에서 예를 들 수 있다. 음악 평론가 한스 켈러는 “현악 사중주의 핵심은 네 대의 동등한 악기들의 대화가 아니다. 동등의 가능성을 지닌 악기들의 대화”라 말한 바 있다. 네 악기가 한꺼번에, 동등하게 연주하면 곡이 신경질적이고 답답해진다. 브람스의 현악 사중주, 모차르트의 후기 ‘프러시안’ 사중주가 그렇다.

좌와 우도 이제 시대에 뒤떨어지는 이념이다. 이념은 증상일 뿐이다. 이념은 사람이 두 눈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그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의 이념은 곧 그의 증상이다. 상식을 깨고, 재해석하고,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고, 왼쪽으로 생각하는 것. 이것도 버릇이고 습관이다. 모든 ‘상식’에는 반전이 있다지만, 반전을 두 번, 세 번, 네 번 반복한다면 그는 철학자이거나 아니면 정직하지 못한 자일 것이다.

니체가 말한 그대로다. “나는 그가 마음에 안 들어.” “왜?” “나는 그와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이렇게 답한 적 있는가. 니체만 가능했다.
2022-04-0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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