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대받던 벽지, 주연 등극

홀대받던 벽지, 주연 등극

입력 2011-04-09 00:00
수정 2011-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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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선영 ‘가치의 부재, 공간에 놓이다’ 展

“어릴 때부터 그림을 배우면서 늘 들었던 얘기가 대상에만 집중하라는 거였어요. 시간 없으면 테이블 위의 중요한 것만 집중적으로 그리고 배경을 밀어버리라는 얘기였지요. 그런데 집과 가정을 소재로 다루다 보니 정작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존재하는 배경이 얼마나 소중한가, 다채로운가라는 느낌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이런 작품들이 나오게 됐지요.”

5월 22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리는 변선영(44) 작가의 ‘가치의 부재, 공간에 놓이다’ 전시에 내걸린 작품들을 보면 화사한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봄날에 잘 어울린다 싶은데 들여다보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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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보다 달 력·액자 등 배경 초점

보통의 풍경이나 정물에서 벽지는 그냥 그렇게 저 뒤에 어렴풋이 비치고 마는 존재다. 전면에 나서는 것은 대개 사람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 공간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물건, 그러니까 정성껏 꾸민 화병이나 화분, 트로피 같은 것을 늘어놔둔 벽장 같은 것들이다.

작가는 이걸 거꾸로 했다. 남들이 정성들여 그리는 것들은 마치 스티커 한장 떼어낸 자리를 만들 듯 허옇게 내버려뒀다. 대신 남들은 대충 밀어버리는 벽지, 저 멀리 벽에 붙은 액자 속 그림, 탁상에 아무렇게나 놓인 달력, 그 달력 아래 깔린 레이스 달린 테이블 보 같은 것들을 세심하게 그려뒀다.

●정밀 문양 펜촉으로 찍어 가며 그려

이번에 선보이는 연작 시리즈 제목이 ‘가치의 정체성을 잃다’(Lost Identity of Value)인 이유다. 언제부터 그림으로 그려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라고 정해졌는지 되물어 보는 작업이다.

때문에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달력이나 그림이 대개 팝 아트 작품이거나 민예화들이다. 간혹 인상파 그림 같은 것도 보이지만, 이 역시 자신의 그림처럼 사람 그 자체를 제거시켰다.

대신 가장 공들인 부분은 정교한 문양의 벽지다. 벽지 문양이 워낙 미세하다 보니 펜촉에 물감을 묻혀 찍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일일이 찍어 그리는 탓에 캔버스를 세우지도 못하고 눕힌 상태에서 허리를 숙인 채 장시간 작업한다. 허리 통증은 기본이고 팔 길이의 한계 때문에 대작을 그리기 어렵다는 고충은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묘한 한국적 냄새가 풍기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작으로 가면 벽지가 있어야 할 장소는 오히려 하얗게 텅 비어 버리고 벽지 문양이 하늘하늘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벽지 문양의 모험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궁금증을 낳는다. (02)720-102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4-0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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